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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신문칼럼

퇴직 이후의 삶이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퇴직 이후의 삶이 막막하고 두렵습니다

익명의 내담자62세/남

저는 현재 교육경력이 39년 6개월 된 고교 교장입니다. 1981년 3월에 신규교사로 발령받아 교직을 시작한 이후 주로 고등학교 교사와 교감, 교장 그리고 교육청의 장학사, 장학관으로 근무했습니다.
그동안 40년 전 초임교사 때의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학교에서 학급담임과 부장교사를 하면서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했습니다. 이후 장학사, 장학관 시절을 거쳐 학교 관리자인 교감, 교장 재직 시에도 학생·학부모·교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학교의 명품교육을 위한 학교경영 활동으로 바쁘게 생활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가는 학교마다 좋은 구성원들을 만나 원했던 교육철학을 펼칠 수 있었기에 그 점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매일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갔다가 학생들이 하교하고 교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후에 학교에서 퇴근하고 있습니다.
저는 오는 8월 말로 정년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인 만큼 3월 신학기에 학생들과 희망차게 생활하면서 교직 생활을 의미 있게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예기치 않은 코로나 감염병으로 3월부터 학생들이 없는 가운데 지금까지 긴 시간이 흘러가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 고3부터 개학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연차로 2학년, 1학년이 개학을 합니다. 그러나 3개 학년 전체가 학교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아 걱정입니다. 학교에서 생활한다고 해도 코로나 감염 우려 때문에 교직원과 학생들과의 생활이 예민해 무척 불편하고 힘들 것 같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교직을 잘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잘 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매우 큽니다.
또 매일 같이 나가던 학교를 나가지 못하게 되었을 때 저에게 닥쳐올 상실감, 좌절감 등 퇴직 후의 일상을 생각하니 심히 걱정되고 두렵습니다. 퇴직은 또 다른 시작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익숙한 생활에서의 단절, 갑작스러운 박탈감, 단절감, 상실감은 저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로 다가올 것 같습니다. 퇴직 후의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좋은 의견 있으시면 도움 주시기 바랍니다.

40여 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목전에 둔 선생님의 감회가 어떠실까 상상해봅니다.

김민녀빚음 센터장

40여 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삶의 시작을 목전에 둔 선생님의 감회가 어떠실까 상상해봅니다. 오랜 세월,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학생들과 함께 해 오셨으니 마치 습관처럼,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안 하면 오히려 이상한 정도로 익숙하게 해왔던 일이었겠지요. 하루 중 대부분 해왔던 일들이 어느 순간 통째로 사라지고, 예기치 않게 텅 빈 시간들을 대면하게 될 때, 때로는 막막한 걱정과 불안이, 때로는 묵직한 상실감과 박탈감이, 때로는 깊은 외로움과 세상과의 단절감이 밀려올 수 있습니다. 이는 은퇴를 앞두었거나 은퇴를 한 후에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일반적인 현상입니다. 은퇴 후의 삶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지난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남은 삶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맞이하면 좋을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인생 후반부의 방향키-지난 삶 돌아보기

은퇴 후, 즉 인생의 후반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생의 전반부를 차분히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의 글을 참조해 인생 후반부의 방향키를 잡는데 도움이 될 몇 가지 질문을 드려봅니다.

 

  • 학생, 학부모, 교직원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하고, 좋은 구성원들과 교육철학을 펼쳐오며, 명품교육을 위해 학교 경영에 매진하였던 지난 교직생활은 선생님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니며, 선생님의 어떠함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 지난 교직생활을 돌아볼 때, 아쉬웠던 점이나 개선이 필요한 점은 무엇일까요?
  • 교직생활을 하는 동안, 개인적인 삶에서 중요하지만 놓쳤던 주요 영역(가족 및 대인관계, 여가, 취미, 건강, 교직 관련 외의 자기계발 등)은 무엇일까요?
  • 교직생활을 의미 있게 마무리 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  지난 삶 동안 개인적인 꿈은 무엇이었으며, 그 꿈은 이루어졌나요?
  •  지난 인생 동안 성취하고 싶었지만 이루지 못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충분한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준비하셨다면, 어떠한 방해도 없는 조용한 장소에서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천천히 써 내려가 보십시오. 며칠이 걸려도 좋습니다. 충분한 여유를 갖고 작성해 보시고, 작성한 내용들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 보세요. 아마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아하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나에게 이런 꿈이 있구나…’, ‘나는 이것을 잘 할 수 있구나…’, ‘이러한 부분을 놓치고, 하지 못했던 건 아쉽구나…’ 등 떠오르는 많은 생각들을 단초로 인생 후반부를 어떻게 살아갈지 설계하신다면, 인생 전반부보다 더 나은 인생 후반부를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 후반부 삶의 목적-의미와 가치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은퇴를 불안해하는 이유는 직업적 생활이 전부인 줄 생각하고 직업생활 중심의 제한된 삶을 사느라, 은퇴 후에 갑작스레 주어지는 여가에 당황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급기야 외롭고, 무의미하며, 공허한 삶을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은퇴 후의 삶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요? 은퇴 후의 삶은 크게 두 가지 형태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쉽고 편안한 쉼이 있는 삶일 수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가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도전하고자 하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둘 다 일 수도 있겠지요.
성공한 각계 리더들의 후반부 삶을 지원하고 돕는 일에 매진한 밥 버포드(Bob Buford)는 그의 저서인 ‘하프타임’(Halftime)에서 ‘인생의 후반전은 직업적 성공을 넘어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밥 버포드의 견지처럼 은퇴 후에도 꾸준히 자신을 계발해 끊임없이 성장하며, 개인의 삶에서 이타적인 삶으로, 타인 및 지역사회의 문제에 기여하는 확장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은퇴 후의 삶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시간이 주어질 것입니다. 교직생활에 할애했던 많은 시간들이 줄어들면서 더 많은 시간적 여유가 생길 것입니다. 그 시간을 더이상 교직생활을 할 수 없는, 공허한 시간으로 보지 말고, 교직생활 동안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일, 중요하지만 놓쳤던 삶의 영역들을 재건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으로 보면 좋겠습니다.
인생의 전반부는 직업적 성공을 위해, 직업생활 중심의 삶을 살았다면, 인생의 후반부는 의미 있는 삶과 가치를 위해 살아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성공적인 인생 후반부를 위해

인생 후반부의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첫째, 지극히 평범한 일에 만족할 수 있는 마음의 변화와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은퇴는 직업적 활동과 자신의 역량발휘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전환하는 것입니다. 교직생활을 유지하고, 교직생활 속에서만 삶의 의미와 자기 가치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직생활 동안 발견했던 선생님의 가치와 열정을 떠올려 보시고, 그동안 쌓아온 선생님의 강점과 재능,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 지역사회와 더 큰 세계를 위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영역에 도전해보시면 어떨까요?
그것은 꼭 경제적인 창출을 낳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같은 목적과 뜻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조직을 결성해 지역사회에 인적자원들을 발굴하고 촉진하며 성장시키는 일이거나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 관련하여 후배 교사들을 지원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완전히 새로운 영역에서 봉사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요. 만일 선생님께서 교직생활 외의 취미나 여가생활로 꾸준히 계발해 온 영역이 있다면, 그것과 관련된 일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둘째, 부부, 자녀, 손주, 가족, 친구 등 이전에 소홀했던 대인관계를 재건해보세요. 직장에서 업무에 관련한 대화상대를 찾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제 직장이 아닌 다른 공동체에서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는데 집중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인생을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만큼 가슴 벅찬 감격과 축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셋째, 건강을 위해 시간을 투자해보세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 누구나 알지만, 참 절감하기 어려운 말인 것 같습니다. 열심히 달려온 젊은 날을 떠올려 보면, 건강보다는 일에 무게를 두고 ‘바쁜 것만 끝나면…’, ‘이것만 이루고 나면…’ 등의 말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피는 일은 미뤄 두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바쁘게 달려온 사람들일수록 은퇴 후에 급격히 저하된 체력과 건강상의 이상 징후들을 감지하면서 우울 및 불안을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하지요. 이것은 건강을 염려하고 건강에 집착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가 간과하기 쉬웠던, 건강한 삶이 주는 기쁨과 활기를 누려봐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넷째, 내려놓음을 연습해보세요. 지금까지 지도자의 자리에서 의지대로 역량을 발휘하고 성취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리더로서의 힘을 거둬들이고, 미완을 받아들이는 수용의 자세를 계발해야 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최근의 발달심리학적 관점은 인간의 발달을 전 생애발달로 봅니다. 즉 과거에는 인간의 인지, 정서, 사회성 등에서의 발달이 성인기 이전까지로 국한된 것으로 봤다면 이제는 노년기까지 인간은 발달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단지, 무엇이 발달하고 무엇이 쇠퇴하느냐의 문제이지요. 그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제는 경쟁과 성취를 위해 모험하고 도전하던 것에서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에 도전하며, 삶의 지혜를 획득해가는 성장과 성숙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중 은퇴를 앞둔 시점에서 내려놓음과 수용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보화와도 같은 것입니다.
이제, 기꺼이, 새로운 희망과 도전으로 인생 후반부에 진입할 준비가 되셨을까요? 전반부보다 더 성공적인 후반부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