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사람의 균형’이 직장 내 인간 관계의 핵심
김민녀빚음 센터장
인생에 있어 일과 인간관계는 모두 중요하다. 직장생활의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초기 성인기 청년들의 주된 어려움을 들어보면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순수하게 일에 관한 것이라기보다 인간관계에 관한 것이 많다.
이 시기 청년들은 인생에 있어 일인지, 사람인지 마치 시소를 타듯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 같다. 일과 인간관계의 균형, 과연 직장생활의 필수일까. 실상 이들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어보면 무언가 조금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로 직장에서 일과 인간관계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고 했던 것이 잘못이다.
삐걱이는 인간 관계 있다면
나, 상대, 제3자 모두 살펴야
20대 후반의 여성이 직장 상사에 대한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찾아왔다. 그런 상사 밑에서 일하느니 차라리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하면서 직장에 다니고 있다. 직장을 그만두자니 자신에게 잘 맞는 일이기도 하고, 꿈도 있어 퇴사를 하더라도 지금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일에 대한 욕심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 같아서는 그 상사만 아니면 다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상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도대체 상사의 무엇이 이 여성을 그렇게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이 여성은 처음에 자신을 대하는 상사의 말투와 태도가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해 도저히 참기 어려운 상황에까진 이른 것이었다.
반말도 존댓말도 아닌 짤뚝한 말에, 사람을 똑바로 처다보지도 않고 툭툭 던지듯 말하지를 않나 매사에 이 여성이 한 일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내리깔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로 인해 자존심을 깍이는듯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상사와 대화를 하고 돌아설 때면 항상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나서 한참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이런 자신을 본 다른 동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까 염려되기도 했다.
또 30대 초반의 젊은 CEO는 신임했던 직원에게 최근 배신감을 느낀 뒤 그 어떤 직원들도 믿을 수 없게 됐을 뿐만 아니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힘든 나날들을 보냈다. 일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많이 의지했던, 그래서 각별히 잘 대해줬던 직원이 다른 직원과 함께 자신에 대한 수위 높은 뒷담화를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수년 동안 자신의 앞에서는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 같이 행동해 회사의 주요 사안들도 같이 상의하고 믿음을 줬는데 그 직원의 본심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들은 모두 문제를 해결하고 직장생활을 잘 할 수 있게 됐다. 해법은 딱 하나였다. 직장에서는 일만 하라는 것.
앞서 말한 20대 후반 여성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자. 상사는 다른 직원에게도 그런 태도를 보인다고 했다. 문제는 특히 이 여성이 상사의 그런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한다는 것에 있다. 그럴만한 이유는 있었다.
일에 대한 포부가 높은 만큼 회사에 기여한 바가 큰 이 여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모든 공치사는 자신에게로 돌리는 듯 말하는 상사가 탐탁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이 여성은 상사의 인정보다 일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목표에 집중하도록 했다. 그렇게 되자 상사가 변하지 않더라도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할 이유가 뚜렷해졌고 상사의 태도는 좀 더 가볍게 흘려버릴 수 있게 됐다.
일과 인간 관계 경계 모호해지면
혼란 속에 허덕일 수밖에 없어
20~3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관계’에 관한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 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한 청년이 ‘함부로 대하는 직장 상사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에 관한 질문을 했다. 위 사례와 유사한 이런 경우 먼저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첫째, 그 직장 상사는 나에게만 그 같은 태도를 취하는가를 유심히 관찰해야 한다. 만일 나에게만 그렇게 행동한다면 사태의 심각성은 더욱 크다. 나에게 어떤 문제가 있거나, 혹은 나에게 문제가 없지만 상사가 나에게 엮여 나를 싫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직장 상사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나의 문제가 아니라 직장 상사의 인격에 관한 문제이다. 그러니 상처받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말고, ‘그런 사람이구나’하고 넘겨야 한다. 하지만 상사가 그런 태도가 쉽게 넘겨지지 않는다면 나의 무엇이 또 걸려 그 상사와 엮이게 된 것이다. 이런 경우는 상담과 같은 형태의 자기 이해를 위한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둘째, 만약 다른 사람들에게도 비슷하게 행동한다는 것이 확인됐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직장 상사를 어떻게 대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이 대목은 사회기술에 관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좀 어려운 사람을 유연하게 대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기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다른 사람들의 대처와 그 대처의 결과를 유심히 살펴본 뒤 상사에게 더 잘 수용되는 방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셋째, 다른 사람들은 나만큼 그 상사를 힘들어하지 않는다면, 나의 무엇이 직장 상사를 견디지 못하게 하는가를 숙고해야 한다. 이것은 내가 가진 권위와의 갈등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고, 나의 자존감이나 열등감에 관한 문제일 수도 있다. 좀 더 가볍게는 앞서 언급했듯 사람을 대하고 소통하는 등의 사회기술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다. 이 부분은 확실히 자신의 뿌리 깊은 문제에 원인이 있거나 취약한 부분에 관한 것이니 더 이상 직장 상사에게만 집중하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려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사실 직장에서 해결해야할 문제가 아니다. 직장 관계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자신의 문제를 직장 외부에서 해결해야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직장 상사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 때 경계설정이 분명히 이루어져야 한다.
앞서 말한 30대 초반의 젊은 대표는 아이디어와 열정 하나로 사업을 확장했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집안도 일으켰다. 일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고, 사업장이 유일한 삶이었다. 사람도 일도 모두 그곳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관계는 힘들었지만, 일은 재미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일 속에서 관계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렇게 의지했던 직장 동료가 퇴사하고 나자 다른 직원들이 더 활력있게 일하고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지는 것이 보였다. 그간 특정인에게 더 마음을 주고 있는 대표의 태도가 알게 모르게 사내 분위기에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대표는 일과 관계에 경계가 없었음을 절감했다. 이후 일찍 퇴근해서 외부 활동을 시작했다. 일과 관계를 분리하기 위해 동호회에도 가입하고 사람도 만났다. 그러자 오히려 일의 능률은 더 오르고, 직원들과의 관계도 훨씬 편안해졌다.
사적 시·공간에서 인간관계 도모,
에너지 소모 줄고 균형 잡기 쉬워
20~30대 젊은 청년들은 직장에서 좋은 인연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나에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있는지가 일종의 성취를 의미하기도 하고, 그만큼 사람이 고픈 경우가 많기도 한 탓에 사람을 갈구한다. 그래서 직장에서도 너무 잘 지내려고 한다. 이미지 관리가 끝이 없고 얽히고 얽힌 관계로 일도 사람도 다 놓치는 것 같다. 초기 성인기는 이러한 고민과 선택의 기로에서 본질을 잘 잡고 균형을 이루어가는 훈련이 필요한 시기이다.
사람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하지만 일과 관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균형이 깨지고, 문제가 혼재돼 일이 문제인지, 관계가 문제인지 혼란 속에 허덕이게 될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는 일만 했으면 좋겠다. 직장의 본질은 일이다. 본질을 잡고 가다 보면, 그 흐름에 따라 관계가 열리기도 하고 일의 성취가 주어질 때도 있다. 일의 성취가 주어질 때는 일로 인정받고, 관계가 열리면 관계의 재미로 살면 된다.
관계는 직장을 벗어나 사적인 공간에서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직장에서의 불편한 관계로 지나친 에너지 소모가 줄어든다. 그렇다고 이 말이 직장 내 관계에서는 마음을 닫고 매몰차게 하자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사적인 시간에서의 관계는 긴장도 더 내려놓을 수 있고, 일을 배제하고 오로지 관계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사람과 만남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직장에서 보다 쉽게 깊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본질에 집중하면서 일과 관계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곧 일과 관계의 균형을 이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