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생각과 마음을 가진 멋진 노년으로 사는 삶
김민녀빚음 센터장
누구나 늙고 싶지 않다. 언제까지나 젊고만 싶다. 그래서 저마다 어떻게 하면 노화를 늦추고 더 젊어보일지 여러 방면으로 관심을 갖고 각고의 노력을 한다. 그러나 결국 누구나 노화한다. 노화를 피할 수 없다면, 오히려 ‘멋지게 나이드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떤 노인이 될 것인가’를 상상하고 소망하는 것은 행복한 노인이 될 수 있는 기회로 삼는 적극적 태도로의 변화를 뜻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노화에 대응하던 것에서 긍정적인 태도로 노화에 반응하는 새로운 접근인 것이다. 피부를 포함한 신체노화든, 인지적인 노화든, 노화가 느껴질 때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됐지, 죽을 때가 됐구나, 아이고 이럴 바에 죽어야지’라고 반응하는 노인과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그럴 수도 있지, 자네가 좀 이해하게’라며 멋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노인은 분명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살다 보면 ‘저 어르신, 참 멋있으셔’할 때가 있고, ‘늙어도 곱게 늙어야지’할 때가 있다. 이런저런 노인들의 모습에 우리를 비춰보고 자각하는 것은 중요하다. 품위있는 노년이 되는 비결은 결국 ‘나는 이런 노인이 될거야’라는 의식과 태도의 변화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막을 수 없는 신체와 인지 노화
두려워하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먼저, 노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노화가 두려우면 아등바등 늙지 않으려 혈안이 되거나 늙어서 고생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에 돈과 건강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노화에 대한 비현실적인 과도한 불안이 돈과 건강에 대한 집착을 낳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화는 응당 각종 질병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이 때 그 질병과 질병으로 인한 고민으로 인해 절망적인 삶을 살 것인지, 고통 가운데서도 희망을 안고 살 것인지는 본인의 의지와 생각에 달렸다. 난치병에 걸렸다고 가정했을 때 죽음에 대한 극심한 불안에만 몰두하면 절망적인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사회적 관계망도 틀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치료가 어려운 병에도 불구하고 행복하게 살고 싶은 본질적인 마음에 집중하다 보면 치료 과정에서 고통이 있을지언정 그 순간을 넘어서면 웃을 때 웃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신체적인 노화도 노화지만, 인지적으로 노화되는 것 또한 막을 수 없다. 노령화될수록 전두엽이 위축되기 때문에 ‘더 너그러워지고, 더 수용적이 되며, 더 지혜로워지겠다’는 의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노년의 지혜를 얻기도 어렵다. 이 같은 의식을 갖고 있는 노년기는 무작정 맞게 되는 노년기와는 분명히 다르다.
무엇보다 본인의 생각을 고집하고, 이것 아니면 틀린 것이라는 생각보다는 ‘이런 생각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으며, 이런 인생도 있다’고 유연하게 생각하려는 여유를 갖는 태도가 필요하다. 세상을 잘 들여다보면 반드시 정답이 있지 않다. 노년의 지혜는 이러한 열린 생각과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새벽 운동을 하면서 운동 후 들른 사우나에서 만나는 많은 어르신들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노년기에 대한 숙고에 많은 도움을 얻었다. 어떤 어르신은 “아이고 팔자가 참 좋다, 운동도 하고 나 때는 애들 키우느라 상상도 못했다”라고 하기도 하지만 어떤 어르신은 “자네들 참 멋지네, 좀 더 젊을 때 운동해 두면 나처럼 늙어서 훨씬 좋지, 그게 재산이야”라고 말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뒤따라다니며 마음에 안 드는 젊은 사람들의 행동거지를 지적하는 어르신들이 있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다가가 젊은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어 대화를 시도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젊은 시절, 각기 어떤 삶을 살았던 간에 열린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것은 관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나이들수록 피할 수 없는 고독
긍정적으로 직접 대면해야
다음으로, 고독과 의존의 균형을 연습하자. 고독이라고 하면 고독하게 죽는 것만 떠올리지 않는가. 사실 고독은 나이와 상관없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익숙해져야 하는 감정이다. 고독을 즐긴다는 말이 왜 있겠는가. 필연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고독이라는 것이 여러 영역에서 사회적 단절이 많아지는 노령에 더 잦아지고, 더 깊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고독을 피하려고만 하거나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해결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혼자 즐길 수 있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적극성으로 직접 대면하는 것이 좋겠다. 물론 몸이 병들고, 신체적으로 나약해지면 누군가의 보호가 분명 필요하게 된다. 하지만 꼭 그것이 가족과 같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일 필요는 없다. 공공기관이나 여러 사회적 시설 등의 도움을 기꺼이 받을 수도 있다. 그곳에도 사회적 관계망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인이나 노년의 부모를 간병하고 있는 성인 자녀들을 만나보면 자녀에게 집착을 보이는 경우를 자주 듣게 된다. 자녀들을 못 보면 자신이 당장이라도 죽게 될까 두려움에 빠져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때문에 한창 바쁜 시기의 자녀들에게 수시로 전화하고 매 끼니를 챙겨주며 당신들의 안위를 살펴봐 주기를 원한다.
암투병 중인 남편을 간호했지만 결국 남편을 먼저 보낸 한 아내의 고백이 떠오른다.
“선생님, 암환자들 병실에 있어 보니 죽음을 맞는 모습이 제각각이더라고요. 사실 살면서 맘 고생시킨 남편인데, 투병할 때는 달랐어요. 참 멋지게 투병하고, 끝까지 멋지게 갔어요. 다른 남편들은 아프다고, 자기 인생이 억울하다며 간호하는 아내들을 그렇게 들들 볶더라고요. 화도 내고 짜증도 부렸다가 생색내며 이것저것 시키기도 하고요. 죽는 날까지 안 죽을 사람처럼 꼬장꼬장하게 굴거든요. 근데 제 남편은 죽는 날까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자기가 하려고 하더라고요. 화장실갈 때 부축해 주는 것 외엔 뭐든 스스로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 앞으로 저 혼자서 살아갈 이야기, 자식들 이야기, 손주들 이야기, 매일 의식이 있는 순간에는 좋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어요.”
이것이 성숙한 노년의 모습이 아닐까. 투병하며,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의존하지만, 의존하는 모습도 이렇게 성숙할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 많아지지만
새로운 도전 시간 찾아야
끝으로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버리고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자. 노화하면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생긴다. 이전에는 할 수 있었지만 이제 할 수 없게 된 것들에만 집중하면 신세 한탄이 절로 나올 수 밖에 없다. 할 수 없는 것이 많아졌다 하더라도 분명 할 수 있는 것들은 존재한다.
할 수 없게 된 일들을 곱씹으며 우울해하는 노인들이 있는 반면 할 수 없게 될 일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겨난 시간을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로 채우는 노인들도 자주 볼 수 있다. 보통 할 수 없게 된 것들을 생각하며 칩거하게 되는 노인들은 이전과 달라진 자신이 남들에게 못나 보일까 염려하고 너무 무능력해진 자신을 스스로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할 수 없게 된 일들은 과감하게 접고, 새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서 열심인 노인들은 노년기도 즐겁고 에너지가 넘친다.
독해를 비롯한 인지능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 의기소침했던 노인들은 노래교실이나 스포츠 댄스 학원을 다니며 새로운 활동들을 배우고, 그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매일 반복하다보니 관절을 비롯한 건강도 좋아지고 새로웠던 활동들이 능숙해지기도 한다. 운동능력이 떨어져서 활동을 피하던 노인들이 글쓰기나 그림 그리기 같은 활동들을 통해 역동적인 마음을 경험하고 나누기도 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새로운 사회적 관계망도 생긴다. 이렇게 또 다른 한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생겨나고, 자녀들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아니라 집중할 다른 관계들이 생겨남으로 인해 그들과 새로운 관계망을 형성하고 살게 되면서 더 이상 목 빼고 자녀들만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어떤 노년이 되고 싶은가? 멋지게 나이 듦을 소망하기를 바란다. 두렵기보다는 즐겁고, 불안하기보다는 편안하며, 꼬장꼬장하기보다는 품위있는 노년의 멋짐을 환영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림 출처: Freepik, 작가 pch.vec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