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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신문칼럼

학교에 가야 할 이유, 단 하나가 필요합니다

개학 시즌, 필자는 학교 부적응으로 방문하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김민녀빚음 센터장

개학하고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이즈음이면 등교 거부, 무단결석과 조퇴 등 학생들의 출결 문제로 교사와 부모는 속앓이를 한다. 개학 시즌, 필자는 학교 부적응으로 방문하는 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난다.
“아침에 잠에서 깨긴 하지만 학교 가기가 싫어서 다시 잠들어요. 친구도 없고, 공부도 하기 힘들고, 선생님도 저 같은 애 귀찮기만 하죠. 그냥 오후에 가서 출석만 하고 와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은 저에게 도움이 되지 않아요. 공부도 못하는데 학교에 왜 가요. 저는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다른 것들을 하고 싶어요.”
“반 친구들이 부담스러워요. 저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조별 수업 때 조를 짜는 데 친구들이 모두 나를 피하고 싶은 것 같아요.”
“학교에 앉아 있으면 답답해서 뛰쳐나가고 싶어요. 누구한테도 말 못하고 가슴이 터질 것 같이 뛰고 숨쉬기조차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에요. 교실이 지옥 같아요.”
지난해 5월 연합뉴스는 학교가 점점 ‘견디기 힘들고 불편한 공간’이 되고 있다는 기사를 발표했다. 매일 대부분의 시간을 일상처럼 보내야 할 학교가 힘들고 불편한 공간이 되면서 학생들의 학교 부적응 문제는 자퇴를 비롯한 개인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학교폭력, 교권침해 등과 같은 대인관계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의 학교 내외적인 문제들을 심화시키고 있다.
학교 부적응 문제를 보이는 학생들은 학업과 관련된 유형, 학교폭력과, 또래 관계, 문화적 차이 및 정서장애, 학교 교칙과 관련된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특히 학교폭력, 또래 관계, 그리고 정서장애와 관련된 유형은 정신건강의학과 및 심리상담센터에서 흔하게 마주할 수 있다.

 

학교 부적응에 여러 요소 혼재돼

학교 부적응의 어려움을 호소해 상담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사실 이 아이들은 학교 부적응의 이유를 하나로 꼽지 않는다. 주된, 혹은 시발이 된 이유는 굳이 하나로 꼽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실상 들여다보면 여러 유형의 어려움이 혼재돼 있음을 발견한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의미 없는 이야기이다. 무엇이 시작됐든 고통에서 벗어나 학교에 가야 할 이유, 단 한 가지를 발견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상처받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학교에 다닐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여기저기에서 흔히 말하는 ‘행복한 학교’가 된다면 아이들이 학교에 갈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행복한 학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정작 아이들은 ‘행복한 학교’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숨 쉴 구멍이 필요할 뿐이다. 공부를 못하고 꿈이 없는 학생도, 사회성이 부족해 친구를 쉽게 사귀지 못하는 학생도, 학교 폭력 등의 과거 상처가 있어 학교가 두려운 학생도, 심리, 정서적인 어려움에 침잠해 있는 학생도 학교에 갈, 단 하나의 이유를 필요로 할 뿐이다. 견디기 힘들고 불편한 그 공간을 하루하루 버틸 단 하나의 이유 말이다.
공부도 못하고 꿈도 없어 학교에 갈 이유가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아니어도 학교에 갈 수 있는 이유를, 또래관계 어려움이 있어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것이 아니어도 학교에 갈 수 있는 이유를, 상처가 깊어 학교에 갈 수 없는 아이들에게는 그 상처가 있어도 학교에 갈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는 눈을 뜨게 해줘야 한다. 사람들은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을 통해 생각한다. 학교에 갈 이유를 찾아야 하는 아이들이 문제의 맥락에서 벗어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경험할 수 있다면,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갈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게 된다.

 

매몰된 문제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야

하지만 학교 부적응 문제를 호소하는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에 매몰돼 있다. 문제에 매몰되면 그 문제를 맥락으로 모든 상황을 보게 된다. 이는 계속해서 문제를 반복 경험할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매몰된 문제에서 스스로는 빠져나올 수가 없다. 필자를 비롯한 심리 전문가 혹은 교사 혹은 부모가 한 줄기 빛이 돼 아이들이 자신의 문제에서 벗어나 현재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볼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 한다.
학교 부적응을 문제로 현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적응의 시발이 무엇이었든, 공통적으로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소소한 또래 갈등에서부터 학교폭력 위원회에 회부될 정도의 묵직한 상처를 입은 아이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상처 경험으로 다른 모든 대인관계에서도 의심과 불신을 보이며, 자기 비하와 자기 평가절하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아이들에게 학기 초는 상당한 위험이 도사리는 전쟁터 같은 공간이다. 누가 아군이며, 누가 적군인지 살펴야 하는 긴장감이 감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혼자 가만히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큰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가만히 있는 아이들도 여러 유형이 있다. 그 중 차라리 ‘모두가 적군이야. 나 혼자 지내는 게 나아’라고 마음먹은 유형의 아이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처절한 외로움을 동반 경험하기 때문에 아군을 갈망하지만, 적군을 경계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들이 지각한 현실에는 모두 적군만 있다. 이 때문에 학급 친구들의 시선과 태도로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가 없다.

 

이런 아이들은 누구라도 먼저 다가와 주기를 바란다. 단순히 소심한 성격 때문이 아니다. 이들에게 누군가가 다가와 준다는 것은 그나마 자기를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이제 학교에서 조금은 안심해도 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이들에게 아무도 다가와 주지 않는다는 것은 모두가 자기를 싫어한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는 ‘피해의식’을 주제로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보기 때문이다.

 

객관적·현실적 시각과 생각이 필요

또래 관계의 상처에 매몰된 아이들을 끌어내고 새로운 현실을 보면서 더 나은 적응을 할 수 있도록 도울 방법은 상처받은 사람의 시선에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시선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정작 자신에게 상처를 준 아이는 지금 이 교실에 있지 않다. 두려워하는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만 있을 뿐이다. 교실에는 자기를 싫어할 아이도 있고, 자기에게 관심이 없는 아이도 있으며, 자기에 대해 그저 그런 감정을 가진 아이도 있고, 때로는 자기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도 있을 수 있다는 객관적이고 현실적이며 고른 시각과 생각이 필요하다. 그리고 자기를 싫어하고 자기에게 관심 없는 아이보다는 자기에게 관심을 보이고 호감을 가진 아이들을 주목하고 찾아내며 그들과 관계하기 위한 시선의 변화가 필요하다.
대인관계를 불편해하는 아이들은 대인관계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생각을 한다. 흔히 대화를 조리 있고 재미있게 이끌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친구가 자신과 있는 것을 지루해할 것이라거나, 서로 관심사가 맞아야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큰 무리에 소속돼야 인기가 있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인다는 생각에 한 두 명의 소수와 어울릴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위축된다. 때로는 무언가 눈에 띄게 잘 하는 것이 있어야 친구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외모가 훌륭해야 친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외형에 집착한다. 불편한 생각에 갇히면 친구의 마음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대인관계도 불편해진다.

 

이해받기보다 먼저 이해하는 마음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기보다 먼저 사랑받고 싶다. 즉, 친구도 자신만큼이나 사랑받고 싶어 하는 연약한 존재임을 주목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창하고 재미있게 말하는 것보다 자기의 말을 들어주는 것이 친구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친구의 관심사를 궁금해하며 물어보고 알아가는 관심이 친구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내가 괜찮은 사람임을 드러내기보다 먼저 친구를 괜찮은 사람으로 알아주는 마음이 친구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다.
지금껏 생각해온 눈에 띄는 어떤 큰 변화보다 이렇게 시선을 바꾸면 전쟁터 같은 그 공간에서 살아남을 이유가 생긴다. 살아남으면 점차 아군이 생기고 적군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가끔 언제 또 전쟁이 터질지 모를 두려움이 엄습해오지만 견딜만하다. 결국 평화가 찾아오고, 전쟁 후 하나 둘 일상이 회복되며 나라가 재건되는 것처럼 아이도 학교에서의 일상을 회복하고 미래를 꿈꾸며 자신의 삶을 다시금 세운다. 대인관계를 불편해하는 아이들에게 시선이 변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자. 학교에 가야 할 단 하나의 이유를 찾는 시작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