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라는 사회에서, ‘관계’라는 기술 습득
김민녀빚음 센터장
아이들이 학령기(8~12세)에 접어들면 비교적 안전하면서 가까운 관계인 가족이라는 작은 집단에서 점차 또래관계라는 치열한 집단으로 들어가게 된다. 또래집단은 나름의 특성에 따라 외모, 운동능력, 학업능력 등 다양한 매력을 기준으로 서열이 매겨지기도 하고 구체적인 관계 특성이 형성된다. 특히 아이들은 또래관계 속에서 사회기술뿐만 아니라 인지기술을 배우며 성장, 발달한다.
또래관계 속에서 사회성이 발달한다는 것은 당연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또래관계 경험을 통해서 인지가 발달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아이들은 집단 속에서 여러 아이들과 각자의 특성과 나름의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한 상호작용 속에서 자신을 집단의 구성원으로 인식하고 자신에 대해 의식하며, 사회적 기술과 자존감뿐만 아니라 사고 및 인지, 통찰 등 많은 영역의 능력들을 습득한다. 집단 속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나고,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 간의 다름을 인식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을 탐색하는 것이다.
가령, 누가 자신을 좋아하고 누가 자신을 싫어하는지, 자신의 어떤 점을 싫어하는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 자신에게는 어떤 친구가 1번인지, 자신은 누구에게 1번인지 등 복잡한 관계의 역동을 관찰하고 사고하면서 복잡한 또래관계를 매우 정교하게 처리하는 추상적 사고를 획득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친구가 ‘나를 좋아한다’ 혹은 ‘나를 싫어한다’는 식의 흑백논리적 사고에서 벗어나며 관계는 상대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배운다.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인지발달을 잘하기 위해서는 아이들은 보고 들은 것들을 잘 이해하고 적절히 반응해야 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감각에 따라, 어떤 감각에는 특히 더 민감하고 어떤 감각에는 덜 민감하고 때로는 둔감할 수 있다.
내성적인 아이들은 대체로 감각에 대한 역치가 낫다는 연구 보고처럼, 어떤 아이들은 대체로 감각에 덜 민감하고, 어떤 아이들은 친구들의 목소리, 몸짓, 표정, 접촉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힘들어한다. 그래서 친구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할 수 있다. 이런 아이들은 많은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도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이들을 두고 단순히 ‘사회성이 부족하다’, ‘친구를 사귀지 못한다’라고 치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다. 더 나아가 더 많은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로 무조건 많은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아이를 밀어 넣어서도 안된다.
학령기 아동의 또래관계는 자의식과 자기개념에 영향을 준다. 아이들은 점차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고 자신의 기대에 따라 상황이 진행된다고 느끼면 친구들이 바라보는 자신을 넘어 스스로 내적 가치와 관념들을 발달시켜 나간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친구들과 자신의 관점을 통합시켜가며, 아이의 내적인 자기감이 형성된다.
아이들은 각자의 특성에 따라 또래관계를 맺고 발달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된 특성을 고려하여 적절하게 반응헤야 아이들이 건강하게 발달할 수 있다.
순해 보이는 ‘위축된 아동’ 공감과 격려, 상호작용 중요
위축된 특성이 있는 아이들은 때로 순한 아이로 비쳐진다. 대체로 있는 듯 없는 듯 무리 속에 존재하며, 이렇다할 눈에 띄는 반응도 없다. 교실에서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 큰 관심이 없어 보이며,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다. 대체로 순하고 조용하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는 간과되었던 특성들이 학교라는 집단 생활이 시작되면서 걱정거리로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런 아이들은 또래 상호작용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심리, 정서발달에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자기 세계에 몰입하는 이 아이들은 때로는 상상력이 풍부하고 창의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다. 위축된 아이들은 자신과 같은 특성의 친구 한 두 명과 어울리기는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도 자신의 생각이나 이야기를 공유하지 않기 때문에 어른들은 이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느낀다.
또한 성장 과정에서 흔히 생기는 도전 과제나 경쟁에 뛰어들기보다는 포기하고 피하며, 자신만의 공상이나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거나 독서나 게임과 같은 혼자 하는 놀이로 도피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신만의 생각에 몰두하고 논리를 견고하게 만들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상에 대해 자기만의 이해의 틀을 구성한다.
위축된 아이들은 겉으로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아이에게는 조심스럽게 더 많은 자극과 접촉, 그리고 상호작용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겉으로 별 문제없고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해서 내버려 두면, 아이는 더 현실과 동떨어진 공상이나 환상에 몰두하게 되고,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동떨어져 있는 조금 다른 자신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자의식과 자기개념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친구들이 자신을 싫어하고,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거나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갖게 되어 상호작용을 더욱 회피하게 된다.
그러므로 위축된 아이들은 점차 또래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도록 아이의 생각과 관점에 공감하고, 가볍고 소소한 일상들을 이야기하는 것을 격려하며, 친구들에게 다가가고 말을 걸고 접촉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이 중요하다.
반응성 좋은 ‘예민한 아동’ 성공경험 통해 신뢰감 높여야
과민한 특성이 있는 아이들은 흔히 예민한 아이들로 인식된다. 이들은 친구들이나 선생님의 말과 행동에 예민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잘 듣고 잘 반응하는 한편, 많은 자극들을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혼란스러워 할 수 있다. 과민한 아이들은 친구들과 신체적인 접촉을 포함하여 감정적으로 부대끼는 것에 예민하기 때문에 무리를 피해 혼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하거나 특별히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에게 몰두하고, 그 친구가 자기와 놀아주지 않거나 자기에게 좋지 않은 반응을 보일 경우에 매우 힘들어 하고 쉽게 상처를 받는다.
또 외부 자극을 지나치게 신경쓰느라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들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해소하기 어렵다. 결국 정서적으로 힘들어질 수 있다. 과민한 아이들을 대하는 선생님이나 부모와 같은 어른들은 극단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 처음에는 아이의 과민함을 완화시켜 주려고 달래고 격려하며 돕다가 지나치다 싶으면 귀찮아하거나 짜증을 내고 감정을 드러내게 된다.
때문에 과민한 아이의 민감성을 잘 다루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많은 자극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과 불안을 완화시키기 위해 아이들의 도전 과제들을 단계별로 세분화하고, 가장 낮은 수준의 과제부터 도전해볼 수 있도록 격려하면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갖고 상황을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좋다.
고집·거부적인 ‘반항적 아동’ 불안·경쟁 내려놓게 도와야
반항적인 특성이 있는 아이들은 사소한 것에도 고집을 부리고 거부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도록 타인을 통제하려고 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친구뿐만 아니라 어른과도 자주 논쟁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사에 질문이 많고, 의구심을 갖고 탐구하며, 똑똑하고, 적극적이며,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다. 이들의 특성은 겉으로 볼 때는 강한 아이로 비쳐지지만, 실상 내면에는 약함이 존재한다.
반항적인 아이들을 지나치게 간섭하거나 개선되지 않는 행동 때문에 지쳐서 포기하고 내버려두는 것은 아이들의 부정적인 특성을 더 강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겉으로 보이는 강함의 이면에 내면의 불안정감과 약함을 알아주고, 고집과 주장, 그리고 경쟁심을 조금 내려 놓아도 세상은 안전하다는 신뢰를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산만한 ‘부주의한 아동’ 강점 북돋고 동기 강화해야
부주의한 특성이 있는 아이들은 주위 환경에 따라 쉽게 산만해지고,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못하며 쉽게 지루해 한다. 또한 이리저리 배회하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하지만 순차적으로 계획하고 끌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일의 끝을 맺지 못하는 한편, 흥미와 관심을 느끼는 영역이 많아 두루두루 시도하고, 특정 영역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보이기도 한다.
부주의한 아이들은 감각 경험에 대해 반응성이 낮거나 지나치게 높은 양상을 보인다. 지나치게 낮은 아이들은 더 큰 자극이 필요하고, 지나치게 높은 아이들은 주의를 기울여 집중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부모의 지시에 적절히 반응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는 아이로 비쳐져 부정적인 지적을 많이 받는다.
하지만 부주의한 아이들은 관심과 흥미가 있을 때 고도의 집중을 보인다는 강점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아이들의 강점을 북돋우고 동기를 증진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약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하고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관심있는 일에 동기를 갖고 열정을 쏟을 수 있다는 강점을 활용하여 아이의 긍정적 정서를 촉진한다면 주의집중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다.
또래와의 놀이를 통해 진득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친구와의 상호작용에서 주요한 메시지들에 집중할 수 있도록, 자신의 감정과 생각의 흐름을 차분하게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도록 촉진해주는 전략은 또래관계를 위시한 사회적 상황의 적응을 높일 뿐만 아니라 건강한 자의식과 자기개념을 형성하도록 하며, 인지를 비롯한 전반에서의 건강한 발달을 도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