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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육신문칼럼

진짜 사람 냄새로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세요

청소년들의 온라인 문화는 그들의 생각과 감정, 대인관계, 일상과 문화 등 정체성을 반영한다.

김민녀빚음 센터장

청소년들의 온라인 문화는 그들의 생각과 감정, 대인관계, 일상과 문화 등 정체성을 반영한다. 임상 현장에서 청소년들로부터 듣는 온라인 세상의 이야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각종 디지털 기술들이 발달하고 코로나 시대를 맞아 원격수업이 이뤄지면서 온라인 문화는 더욱 활성화됐다. 온라인을 매개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청소년 범죄 또한 늘어나고 있으며 내용의 심각성도 더해가고 있다. 이런 현상 속에는 우리 아이들의 심리 내면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교육통계서비스에 따르면, 2020년 학생들의 사이버 폭력 피해 경험률은 19.7%에 달한다. 코로나로 비대면 수업이 늘면서 같은 학교 내에서의 학폭 사례는 줄었지만, 사이버 폭력은 늘어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필자 또한 비슷한 시기에 온라인상에서 벌어진 여러 형태의 폭력으로 큰 심리적 외상을 입은 사례들을 비롯해 실제 학교폭력위원회로 회부되거나 민형사상의 절차를 밟는 단계로까지 확대되는 사례들을 자주 접했다.

  • “심심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공감받고 싶었어요. 제가 대화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연락되는 사람이 필요해요. 한 사람이 안 되면 다른 사람에게라도 해야 하니까…. SNS로 여러사람과 연락하고 지냈죠. 그러다가 먼 지역에까지 가서 만나기도 했어요. 막상 만나보면 성인들도 있고 이상한 사람들도 있고, SNS로 대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면 또 손절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락해요.”
  •  “저랑 싸운 친구가 제가 모르는 다른 애들을 단톡방에 초대해서 저를 욕하기 시작했어요. 단톡방에서 나가면 초대하고, 나가면 또 초대해서 피할 수가 없는 거예요. 결국 ‘읽씹’을 했더니 SNS DM으로 모르는 애들이 저에게 욕을 보냈어요. 저는 누군지도 모르고 당하죠. 휴대폰을 보기가 무서웠어요. 아무도 믿을 수 없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나를 욕하는 것 같고… 외롭고, 우울하고 죽고 싶었어요.”
  •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친하게 지내는 애랑 개인 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기 시작했어요. 친해지고 나니까 제 신체 사진을 보내달라고 하는 거예요. 안 보내주면 저랑 나눈 사적인 이야기들을 다른 애들한테 알리겠다고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보냈는데 이제는 그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하면서 계속 다른 사진을 보내달라고 해요. 밖에 나가는 게 너무 무서워요. 친구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제 사진을 봤으면 어쩌지 싶어 잠도 오지 않고 눈물만 나요. 믿을 사람이 없어요.”
  • “저를 챙겨주는 선배가 있었어요. 친구들도 소개해주고, 저를 데리고 다니면서 재미있게 놀았어요. 그러다가 그 선배가 저에게 이것저것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아이에 대해 좋지 않은 글을 커뮤니티에 쓰게도 하고, 그 내용을 퍼다 나르라고 했어요.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선배가 아니었으면 지금의 내가 없는 거니까… 누구도 선배처럼 나한테 잘해주지 않았으니까, 시키는 대로 하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문제가 될지는 몰랐어요.”
  • “제가 만든 커뮤니티와 오픈 채팅방에서 저는 아주 인기 있는 존재예요. 방장이니까 사람들이 관심도 가지고 제 말도 잘 듣고, 먼저 다가와요. 채팅방에서 사람들 사이의 갈등도 중재하고, 고민 있는 사람에게 조언도 해주니까 사람들이 저를 더 인정하죠. 그런데 학교에서 저는 존재감이 없어요.”

 

여러 형태 혼재돼…친한 사람에게 피해 겪어

임상 현장에서 만나는 청소년들은 다양한 형태의 사건들로 상처받은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내어놓는다. 청소년들이 보고하는 사건들은 한 가지 형태만을 띄지 않으며, 여러 형태들이 혼재돼 있다. 특히 심각한 것은 친분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겪는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 성 관련 문제로도 이어져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점이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청소년 문제들은 디지털 기기가 지니는 특성 때문에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자행된다. 그렇다 보니, 학교를 벗어나도 사건은 멈추지 않는다. 심지어 등교를 하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도 계속 따라 다닌다. 교사나 부모의 눈을 피해 교묘하게 이뤄지기 때문에 빠른 조치를 취할 수도 없으며, 처벌 할 뚜렷한 증거를 찾기도 어렵다. 한 번 시작된 지옥같은 굴레는 벗어나기가 매우 어렵다. 성장하면서 한 번쯤 겪고 배울만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심각성을 가십거리로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벙어리냉가슴 앓듯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 아이들의 내면을 이해하고 도울 준비를 하고자 함이다. 청소년들이 인터넷 세상이라는 사각지대에 빠져들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들을 깊이 공감하기 위해 아이들의 내면세계로 들어가 보자.
온라인 세상에서 관계를 찾고 빠져드는 아이들은 현실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인관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낀다. 겉으로는 친구도 잘 사귀고 학교생활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나 속은 텅 비어있다. 실제 대면해야만 가능한 관계에 대해 두려움과 공허함이 있다. 관계가 있을 경우에도 깊게 사귀지 못하고 금방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삶은 외롭고 지루하다. 통하는 사람이 없으며 채워지지 않는 욕구불만이 가득하다. 관계 속에서 살아있음을 느끼기 원하지만 녹녹지 않다. 이런 보상 심리는 온라인 세상으로 향한다. 그 속에서 관계하며 존재감을 느끼고자 한다.

 

외로움 때문에 가짜 친밀감에 급속도로 몰입

건강한 관계에는 친밀감(intimacy)이 필수적이다. 친밀한 관계는 시간을 두고 충분히 알아가고 공감하며,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관계다. 이런 관계는 서로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편안하게 해주며, 서로를 행복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든다. 감출 것도, 꾸밀 것도 없다. 반면, 온라인 세상에서의 관계는 대체로 서로에 대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급속도로 발전한다. 이들 관계는 자신의 외로움과 갈망이 만들어낸 상상 속의 자기와 상상 속의 대상으로 시작된다. 견딜 수 없는 목마름은 온라인 세상에 급속도로 몰입하게 만들고, 거짓된 자신과 거짓된 상대가 만든 가짜 친밀감에 빠져들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거짓된 자기와 대상은 실체를 드러낸다. 거짓된 친밀한 관계에 몰입할수록 진짜 자기가 드러날까 두려워한다. 과거의 상처가 만들어낸 수치심과 열등감으로 점철된 진짜 모습을 보면 상대가 떠날 것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받을 수 없어’, ‘나는 수치스럽고 열등한 존재야’, ‘진짜 모습을 알면 반드시 나를 떠날 거야’ 등 어두운 내면의 소리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음을 느낀다. 때마침 아주 사소한 상대방의 행동은 수치심과 열등감이 만들어낸 두려움에 불을 지핀다. 이쯤 되면 스스로 상대방을 차단하든, 상대방으로부터 차단되든 관계는 급작스럽게 종결된다. 실상은 각자가 만들어낸 상상 속 대상의 실체를 대면하는 지점인 것이다. 이렇게 온라인 세상의 관계는 또 하나의 상처로 기억되고, 결국 더 큰 정서적 허기(emotional hunger)를 남기며, 자기의 존재감은 바닥을 친다.
굶주리면 배를 채우기 전에는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과 흥미가 생길 수 없는 것처럼, 정서적으로 굶주리면 자기를 잃어버리고 건강하지 않은 관계에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심리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 수가 없다. 건강한 친밀감 속에서 충분히 사랑받고 가득 채워지면 자신의 존재는 분명해진다. ‘나는 누구인가’에 관한 총체적이고 일관적인 믿음인 자아 정체감이 세워지면, 누군가의 지속적인 찬사와 관심을 받기 위해 안달 나지 않는다.

 

좋은 사람이 생길 때까지 혼자 있는 외로움을 견딜 수 있고, 자신을 손상시킬 요구를 하는 타인에게 끌리지 않는다. 지나치게 의존할 대상이 필요하지도 않고, 불필요한 복종도 하지 않는다. 짜릿한 자극이 없어도 삶이 지루하지 않으며, 필요하다면 삶의 지루함도 견딜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산적인 호기심과 탐구심을 좇아 성장하는데 몰두한다. 친밀한 관계 경험은 이렇게 사람을 건강하게 성장시킨다.
온라인에서 경험하는 관계는 아이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쉽게 잡히고 달콤하지만, 쉽게 달아나고 쉽게 쓴맛을 남긴다. 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근본적 해결책은 친밀한 관계를 통해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것이다. 관계에서 겪는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뿌리 깊은 고립에서 나와, 실제 관계로 들어가야 한다. 진짜 사람 냄새를 맡으며, 진정한 보살핌(care)을 받아야 한다.

 

좋은 부모가 없다면 좋은 선생님이 있으면 되고, 좋은 선생님이 없다면 좋은 친구가 있으면 된다. 가까이에서 접촉할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존재, 단 한 명이면 가능하다. 그러한 관계 속에서 우리 아이들은 과거 상처가 치유되고, 용기 있게 진짜 자기를 드러낼 수 있으며, 상대의 진짜 모습을 인정하고 보듬어주는 건강한 정체성을 지닌 존재로 성장할 수 있다. 더 이상 가짜는 필요 없게 된다.